예루살렘에서 사해로 내려가는 길은 그야말로 가파르다. 예루살렘이 해발 800m이고 사해의 수표면이 -300m정도, 예루살렘에서 사해까지 직선거리 25km 자동차로 35km, 1000m의 고도를 자동차로 30분 안되는 거리를 계속 내리달려야 한다. 늘 그런것은 아니지만 이따금씩 기압차이 때문에 귀가 멍멍해지는데 사해 해변을 한참을 달릴때까지도 귀의 멍멍함이 계속되는 경우도 있다. 아래 사진은 1번 고속도로를 따라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방면으로 쭉 달리는 중간에 세워져 있는 해수면 표식이다. 지금부터 바다 밑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 같다.


이 표식 주변에 낙타가 한마리 대기하고 있다. 절대 타지는 마시기를 바란다.


 예루살렘에서 말레 아둠밈을 거쳐 이 표식까지 약 20여분 정도 걸리고, 이 표식에서 다시 차를 타고 10여분 정도 달리면 여리고에 도착한다. 여리고 옆을 지나쳐 90번 도로로 접어들면 사해에 도착한다. 여기서 잠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 주변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서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난 곳이 바로 이 길이기 때문이다. 지질학적으로 이 일대는 유대광야로 일컬어진다. 한국에 있을때 광야라 하면 도대체 뭔지 감이 잘 안왔는데, 이스라엘에서 살면서 광야가 무엇인지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유대광야는 우리말로 딱 부러지게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다. 사막도 아니고, 들판도 아닌 것이 하여튼 독특한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아래 사진 두 장은 같은 장소에서 방향만 다르게 해서 찍은 사진들이다.


유대 광야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분명 사막은 아니다. 그러나 물도 풀도 나무도 정말 아무것도 없는 땅이다.


 평상시엔 보이는 그대로 황무지다. 유대광야 지역은 일년이 지나도록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예루살렘 주변 산악지역에 내린 비나 눈의 양이 많을 때 그 물들이 이 유대광야 지역으로 흘러든다. 이때 와디(우리말로 하면 건천, 평상시엔 물이 흐르지 않는데, 우기때만 엄청난 양의 물이 흐른다.)를 중심으로 일시적으로 물이 이 지역에 공급된다. 또한 봄이 되면 실제 비가 내리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유대광야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물이 공급되면 아래 사진처럼 땅이 초원으로 변한다.


몇일 전에 내린 눈과 비가 황무지를 초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지금은 시기적으로 겨울이라서 이 정도지만, 봄이 되면 유대광야에도 들꽃이 만발한다.


 하지만 초원으로 변한다해도 그것은 일시적 현상일뿐, 유대광야는 기본적으로 황무한 골짜기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골짜기다. 한번씩 광야로 나가 걸어보면 '왜 예수님은 이런 안좋은 땅에서 태어나셨는가?'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그정도로 황량하고 거친 곳이 바로 광야다. 유대광야를 지나 사해에 다다르면 아래와 같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광야에서 바라보는 사해는 참 아름답다.


오늘날 사해는 요단강과 마찬가지로 옛날에 비교해 수면이 상당히 내려가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물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사진에서 보이는 땅으로 보이는 부분도 옛날엔 물이었다.


 바다 건너 보이는 곳은 요르단이다. 사해를 이루는 물은 소금물이다. 궁금해서 손에 찍어서 한 번 맛을 봤는데, 너무 짠 수준을 넘어서서 혀가 쓰다고 느낄 정도로 소금 농도가 짙은 물이다. 사해에서 둥둥 떠다니며 누워있는 사람들 사진을 한번쯤은 보셨으리라 생각한다.


북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산이 병풍처럼 사해를 둘러싸고 있다.


 아래 영상은 엔게디에서 예루살렘 오는 길에 잠깐 차에서 내려 헬리켐으로 촬영한 영상이다(720p 60fp로 보면 더 선명하다.). 영상에서도 보이듯이 사해해변을 둘러싸고 있는 마치 거대한 벽처럼 보이는 산이 사해 끝까지 이어진다. 이 산이 사해와 유대광야를 구분하는 경계가 된다. 사해 해수면에서부터 높게는 400m 낮게는 300m까지 끝없이 바다와 산이 붙어있다. 영상에 보이는 산을 넘어가면 산은 다시 완만하게 높아지면서 예루살렘까지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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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Hwang
성경과 성지의 살아있는 연결을 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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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스코푸스 산)에서 자동차로 10여분 정도 436번 도로를 타고 가다 북쪽에 있는 가장 높은 산 정상에 있다. 정상까지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선지자 사무엘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으로,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기도를 드린다. 지금 현재도 발굴이 계속해서 진행중이다(발굴이 완료되면 입장료를 받는 국립공원으로 개장 예정).사진에서 빨간색 부분(예루살렘 방향)으로 헬레니즘 시대의 집과 거리에서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그리고 사진에서 파란색 부분의 발굴에 의하면 십자군 시대에 이 곳은 성지를 순례하는 여행객들이 거쳐가던 장소로 밝혀졌으며, 거대한 채석장이었던 곳에 돌을 깍아 말 먹이통을 만들어 사용한 흔적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또한 나비 사무엘은 전통적으로 그리고 여러 대표적인 학자들에 의해 사무엘이 회개를 촉구했던 '미스바'로 여겨지는 장소다. 물론 학자들 중에는 다른 장소를 미스바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곳이 미스바가 아니라는 결정적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 곳을 미스바로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 판단일 것이다. 사무엘은 이 곳에서 사사의 역할을 수행했고(사무엘상 7장), 사울은 이 곳에서 왕위에 올랐으며(사무엘상 10장), 이 곳은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충지였다(열왕기상 15장).  


이 사진은 북서쪽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촬영했음


 나비 사무엘에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이 곳이 정말 높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오늘날 예루살렘시가 선명하게 바라보일 정도다. 아래 영상은 나비 사무엘 정상에서 헬리캠으로 주변을 360도 바라본 전경이다(720p 60f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또한 위 사진에서 파란색 방향으로 바라보면 기브온이 그야말로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여리고와 아이성 함락 이후 기브온 주민들은 여호수아에게 접근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멀리서 온 주민이라고 속여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었다. 이후 아모리인들이 기브온을 공격했을 때 여호수아는 아모리인들과 전쟁을 치뤘는데, 이때 달은 아얄론 골짜기에 머무르고 태양은 바로 이 곳 기브온에 머무르는 일이 일어났다. 또한 기브온은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린 장소이기도 하다. 아래 영상에서 나비 사무엘서 바라보이는 기브온을 볼 수 있다(720p 60f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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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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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동편 감람산 상공 100m 지점에서 내려다본 예루살렘


 예루살렘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도시를 걸어다녀보면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돌 하나조차도 예사롭지 않은 도시가 바로 예루살렘인 것이다. 또한 예루살렘은 기독교와 이슬람과 유대교가 모두 성지로 여기는 곳이다. 최근에 팔레스틴과 이스라엘의 긴장관계가 극도로 치닫고 있는 와중에 이스라엘 정부가 황금사원으로 통하는 길을 통제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조치들은 종교적으로 아주 민감한 문제를 야기하곤 한다.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Old City(예루살렘 성벽 안쪽 지역)는 유대교, 기독교, 아르메니안 정교, 이슬람이 자신들만의 영역을 확보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이번에는 Old City의 전체적인 윤곽을 중심으로 포스팅 해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듯이 고대 예루살렘은 오늘과 같이 크지 않았다. 위에 보이는 헬리캠으로 찍은 사진에서 파란색 부분(오벨 지역)과 빨간색 부분(기혼샘과 실로암 못까지 이어지는 지역) 그리고 오늘날의 바위사원(옛날 솔로몬 성전 자리)까지가 포로귀환 당시의 예루살렘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천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15세기에 이르러서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의해 오늘날의 예루살렘 성벽의 모습이 갖춰졌다.


 예루살렘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이 성이 그야말로 자연요새임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예루살렘 동쪽으로는 기드론 골짜기가 서쪽으로는 힌놈 골짜기가 있으며 예루살렘 남쪽에서 이 두 골짜기는 만난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원래부터 북쪽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자연 그대로의 깊은 골짜기를 가진 요새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북쪽만 지키면 안전한 그런 성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예루살렘은 항상 북쪽에서 침입한 적들에 의해 주인이 바뀌게 된다. 


힌놈의 골짜기의 모습이다. 오늘날은 이 골짜기를 따라 도로가 만들어져 있다.


 위 사진은 힌놈의 골짜기이고 아래 사진은 기드론 골짜기다. 학자들은 이 골짜기들이 고대엔 훨씬 더 깊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에 걸쳐 예루살렘이 조금씩 확장되는 과정에서 도시를 건설하고 남은 돌들이 이 골짜기들로 굴러와 쌓여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마카비 하스몬 왕조때는 예루살렘 남서쪽 모퉁이 지역의 골짜기를 매립하는 공사를 통해 예루살렘의 넓이가 넓어졌다. 오늘날 봐도 엄청나게 깊게 보이는 이 골짜기들이 지금보다 더 깊었다면 그 어떤 군대도 이 골짜기들로 예루살렘을 점령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예루살렘 동쪽 성벽과 비교되는 깊은 기드론 골짜기


 아래 영상은 힌놈 골짜기와 기드론 골짜기 각각의 상공에서 촬영했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이 영상은 오벨지역에서 바라보는 바위사원이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오늘날은 이슬람의 3대 사원 중 하나이다. 하지만 원래 이곳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했던 곳이고, 다윗이 값을 주고 산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이었으며, 솔로몬이 지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던 장소이다. 지금 볼 수 있는 황금돔도 참 아름답지만, 솔로몬 성전도 역시 아름다웠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 그 성전은 정확하게 고증하기가 어렵다. 현재 예루살렘 남동쪽 벽 바깥 지역에서 발굴된 오벨(오펠)지역은 솔로몬 당시의 도시다. 현대 고고학에서는 오벨을 가리켜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실로암 못에 이르는 전체 지역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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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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