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은 인천으로 상륙작전을 감행해 한반도를 반으로 갈라놓은 상태에서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했다. 전쟁역사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는 작전이다. 이스라엘도 가나안 정복을 시작하면서 여리고를 먼저 공략했다. 그리고 아이였으며, 다음 공략대상은 쉐펠라 지역을 남북으로 가르는 기브온 지역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하지만 기브온 공략은 실패로 돌아간다(기브온 포스팅 참조). 하지만 가나안 남부에 있던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예루살렘, 헤브론, 야르뭇, 라기스, 에글론)의 연합군이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은 기브온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다. 연합군은 예루살렘에 모인 후 지체없이 북쪽으로 진군해 기브온을 포위했다.


기브온의 지형적 조건상 연합군의 포위경로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진군한 다음, 기브온을 향해 서쪽으로 들어오는 경로뿐이다. 기브온 남쪽은 오늘날 나비 사무엘이 있는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다.


 기브온이 포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여호수아는 길갈에서부터 밤새 진군하여 기브온을 포위한 아모리 연합군을 기습적으로 공격했다. 사실 평화조약을 지키기 위한 공격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나안 남부 군사세력을 한 번에 궤멸시킬 수 있었던 기념비적인 전투가 된다. 다섯 왕과 연합군은 기습공격에 크게 당황하고 도망가기 시작한다. 기브온 남쪽은 산으로 가로막혀있고, 자신들이 왔던 길은 이스라엘이 이미 진을 치고 있는 상태에서 연합군은 해안평야 방향으로 난 길의 길목인 벧호른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벧호른은 해안평야로 이어지는 길의 길목이다.


 여호수아서 10장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살륙하고 벧로흔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른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기브온, 벧호른, 아얄론 골짜기의 위치에 대해서는 기브온 포스팅을 참조) 

 벧호른은 지금 현재 방벽으로 둘러싸여 출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오늘날 443번 도로를 따라 달리면 아모리 연합군이 퇴각한 길이 어떠한지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윗벧호른으로 올라가는 비탈길과 아랫벧호른에서 아얄론으로 이어지는 지역까지 이스라엘군은 퇴각하는 아모리 연합군을 죽이고 또 죽였다. 추격을 해도해도 끝이 없자 여호수아가 기도했고, 태양은 기브온에 달은 아얄론 골짜기에 머무르면서 추격은 계속되었다. 또한 하나님은 아얄론 골짜기를 따라 도망가던 아모리 연합군에서 큰 우박을 내리심으로 이스라엘이 죽인 것보다 더 많이 죽이셨다. 


아랫 벧호른부터 시작해서 아얄론까지 이어진 곳이 바로 아얄론 골짜기다. 아얄론으로 여겨지는 이 구릉은 지금 현재 1번 고속도로 옆에 있는 아얄론 공원 안에 있다.


 추격은 아얄론을 지나 더 남쪽에 있는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어진다. 기브온에서 시작된 전투와 이어진 추격으로 인해 여호수아는 가나안 남쪽 아모리 세력을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 여호수아는 비록 기브온 거민들과 평화조약을 맺는 실수를 했지만, 하나님은 그 실수까지도 자신의 섭리 안에서 이끌고 계셨던 것이다. 아래 영상은 기브온과 아얄론의 모습이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지도상에 표시된 도시들은 대략적인 위치다.






WRITTEN BY
Pastor Hwang
성경과 성지의 살아있는 연결을 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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