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여리고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시험산 입구에 거대한 흙무더기가 보이는데 이곳이 고대 여리고성이다. 오늘날엔 Tell-es-sultan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실 성경을 비평적으로 보는 사람들과 고고학자들에게 여리고는 참 어려운 동네다. 왜냐하면 여리고에는 여호수아의 이스라엘 군대가 여리고를 정복했다는 확실한 고고학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출애굽과 광야 40년도 마찬가지). 그래서 많은 학자들로부터 출애굽과 함께 신화적 이야기 취급을 당하는 것이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여리고 정복의 기록이다. 

 일련의 이런 움직임들은 성경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현재까지 이스라엘의 여리고 정복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정복했다는 사실을 뒤집을 만한 명백한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성경 역사를 과감히 부정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니다.


파란색: Gastang의 발굴작업 / 빨간색: Kenyon의 발굴작업 / 녹색: Kenyon이 발굴한 절개단층. Tell-es-sultan의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찍은 상공사진.


 고대사회에서 방어가 잘 되어있는 성을 공략할 때는 규칙이 있다. 일반적으로 추수 바로 직전에 성을 공격한다. 그래야만 성 주변의 곡식이 성을 공격하는 군사들의 식량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봄에 요단강을 건너고 길갈에서 유월절을 지킨 다음, 가나안의 추수가 끝난 후에 여리고를 공격했다. 실제로 여리고를 발굴했을 때 학자들은 185리터에 달하는 곡물을 발견했다. 점령당한 성에서 곡물이 나왔다는 것으로부터, 여리고는 다른 고대도시들처럼 포위에 의한 기근으로 멸망한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해진다. 그렇다고 침략자들이 곡물을 약탈한 것도 아니다. 곡물이 남아있다. 이런 정황들은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공략한 것으로 설명하면 모든 의문이 풀린다. 

 여호수아서에 의하면 여리고 공략은 일반적인 군사공세와 포위가 아닌 특별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여리고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졌기에 성을 점령한 후에 일체의 약탈은 금지되었다. 그래서 성이 무너지고 난 다음에도 곡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망대의 크기와 주변의 성벽을 보면 고대 여리고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 망대 안쪽 발굴지의 모습이다.


Tell-es-sultan 서쪽 성벽 절개 단면의 모습. 성벽이 바깥으로 무너지면서 성벽 하단부에 진흙층이 두껍게 쌓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Tell-es-sultan의 남쪽 발굴지다. 1950년대에 Kenyon이 발굴한 것을 최근에 Wood가 BC 1,400년으로 연대를 측정한 지역이다.


 여리고의 흙무더기에 폐허에 올라서 있으면 때로 여호수아 당시의 함성이 귀에 들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크고 높았던 성은 사람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졌다. 오늘날의 이 곳 여리고의 폐허는 하나님의 승리를 보여주고 있다. 아래 영상은 Tell-es-sultan 상공 150m 지점에서 촬영한 영상이다(1080p로 재생 가능합니다.).






WRITTEN BY
Pastor Hwang
성경과 성지의 살아있는 연결을 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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