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벧세메스는 소렉골짜기를 건넌 직후 38번 국도 변에 위치해있어 차를 세우고 바로 볼 수 있다. 오늘날 벧세메스의 서쪽 모퉁이에 바로 붙어 있어서 찾아가기도 수월한 편이다. 오늘날 이스라엘 지도에 있는 정식명칭은 Tel Beit Shemesh다. 


Tel Beit Shemesh 동쪽 구릉의 모습


Tel Beit Shemesh 동쪽 구릉 모습


 벧세메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법궤다. 대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이 블레셋과의 전쟁에 법궤를 가지고 나갔으나 패하고 말았고, 동시에 여호와의 법궤도 블레셋에 빼앗기고 만다. 그때부터 법궤는 일곱 달을 블레셋에 머물렀다(아스돗-가드-에그론). 하지만 법궤가 가는 곳마다 이상하고 흉흉한 일들이 일어나고 재앙이 끊이지 않자 블레셋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고, 블레셋 지도자들은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주기 위한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젖을 뗀지 얼마되지 않은 암소 두마리가 끄는 수레에 법궤를 싣고 벧세메스를 향해 가게했다. 블레셋은 만약 소들이 벧세메스로 간다면 법궤로 인한 재앙들은 여호와가 내린 것이고, 소들이 그냥 젖먹이 새끼들을 찾든지 아무 곳이나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면 그저 우연히 일어난 재앙으로 여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에그론을 출발한 암소들은 곧장 벧세메스를 향해 갔다. 


 실제 이 곳을 둘러보면 에그론은 소렉 골짜기 동쪽 거의 막바지에 있고, 벧세메스는 소렉 골짜기의 동쪽 초입에 있다. 그리고 이 두 도시 사이에 딤나가 있다. 사실 소들이 벧세메스로 직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새끼 소에게 가든지 벧세메스로 가는 길 가까이에 있는 딤나로 갈 확률이 더 높았다. 


벧세메스 상공에서 소라를 바라보고 찍은 사진


벧세메스 상공에서 딤나를 바라보고 찍은 사진



 아래 영상은 벧세메스와 소렉 골짜기를 헬리캠으로 촬영한 것이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Tel Beit Shemesh는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상당히 요새화된 도시였다. 블레셋과 국경을 마주한 관계로 늘 긴장관계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Tel Beit Shemesh의 모습



WRITTEN BY
Pastor Hwang
성경과 성지의 살아있는 연결을 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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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에서 1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가 38번 국도로 접어든 후 10분 정도 달리면 상당히 큰 규모의 소렉 골짜기(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골짜기와는 사뭇 다르다. 어떻게 보면 평원처럼 보이기도 한다.)가 눈에 들어온다. 골짜기를 건너기 전에 우측으로 접어들어 Zora Forest 안으로 들어선 후 산마루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삼손의 고향 소라(오늘날 이름 Tel Tsora)가 있다. 


Tel Tsora 남쪽 상공에서 찍은 사진


Tel Tsora 북쪽 상공에서 찍은 사진


 소라 정상에 서면 소렉 골짜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오늘날 소렉 골짜기 한 가운데에는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철로가 놓여있다. 단 지파 사람이었던 삼손은 소렉 골짜기 일대에서 블레셋에 맞서 싸웠다. 블레셋은 수시로 소렉 골짜기 일대로 들어와 약탈을 일삼았다. 소렉 골짜기는 해안평야에서 베들레헴으로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이어지는 통로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적군 블레셋에게 절대 내줄수 없는 영역이었다. 삼손의 시대에 대해 사사기 14장은 이렇게 말한다. 

"그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암울하기 그지없는 시대에 소렉 골짜기에서 블레셋을 혼자서 감당한 사사가 바로 삼손이다.


소라에 올라서면 소렉 골짜기가 잘 내려다보인다.


 삼손하면 떠오르는 것이 들릴라다. 그녀는 소라에서 내려와 소렉골짜기를 따라 서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골짜기 중앙 근처 평원에 있는 딤나라는 블레셋 도시의 여자다. 삼손은 들릴라 이전에 또 한명의 딤나 출신 블레셋 여자와 혼인한 적이 있었다. 이 결혼식은 우여곡절 끝에 파국으로 치달았고 삼손은 그것을 빌미로 딤나와 그 일대 밀밭과 포도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소렉 골짜기에 있는 딤나 농사하기에 굉장히 좋은 땅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이곳에서는 포도를 비롯한 다양한 농사가 아주 잘되는 지역이다. 그 이후에도 삼손은 나귀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쳐서 죽이는 등 블레셋을 향한 사사로서 맹활약했다.


성경은 삼손이 딤나에 내려갔다고 표현하는데, 지리적으로 가능한 표현이다. 높이 면에서도 소라 꼭대기에서 딤나까지는 많이 내려가고, 골짜기의 상류에서 하류로도 내려갔다.


 아래 영상은 삼손이 활약했던 소렉 꼴짜기 일대를 헬리켐으로 촬영한 것이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Tel Tsora에 있는 성경구절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라 하니라" 사사기 15:16


 위 사진에 나오는 사사기 15장 16절은 삼손이 남긴 유일한 시다. 우리말로 하면 이게 무슨 시냐고 할 수도 있지만 히브리어를 발음 그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빌리히 하하모르

하모르 하모라팀

빌리히 하하모르

히케티 엘리프 이쉬

 히브리어로 보면 우리나라 시조와 같은 운율이 나온다. 여기서 "하하모르"가 나귀 턱뼈를 말하는데 마치 사람 웃음소리와도 비슷하다. 그래서 삼손이 하하모르 하하모르 하면서 하나님이 너희를 치셨다고 껄껄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비록 나중에 삼손은 들릴라에게 배신당하고 잡혀가 두 눈이 뽑히고 만다. 하지만 죽기 직전에 삼손은 다시 한 번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그렇게 받은 마지막 힘으로 다곤 신전의 기둥을 무너뜨림으로 수많은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었다.


오늘날 Tel Tsora의 모습


Tel Tsora에 있는 고대 주거지 흔적들


Tel Tsora에 있는 삼손의 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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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Hwang
성경과 성지의 살아있는 연결을 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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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은 인천으로 상륙작전을 감행해 한반도를 반으로 갈라놓은 상태에서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했다. 전쟁역사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는 작전이다. 이스라엘도 가나안 정복을 시작하면서 여리고를 먼저 공략했다. 그리고 아이였으며, 다음 공략대상은 쉐펠라 지역을 남북으로 가르는 기브온 지역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하지만 기브온 공략은 실패로 돌아간다(기브온 포스팅 참조). 하지만 가나안 남부에 있던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예루살렘, 헤브론, 야르뭇, 라기스, 에글론)의 연합군이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은 기브온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다. 연합군은 예루살렘에 모인 후 지체없이 북쪽으로 진군해 기브온을 포위했다.


기브온의 지형적 조건상 연합군의 포위경로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진군한 다음, 기브온을 향해 서쪽으로 들어오는 경로뿐이다. 기브온 남쪽은 오늘날 나비 사무엘이 있는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다.


 기브온이 포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여호수아는 길갈에서부터 밤새 진군하여 기브온을 포위한 아모리 연합군을 기습적으로 공격했다. 사실 평화조약을 지키기 위한 공격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나안 남부 군사세력을 한 번에 궤멸시킬 수 있었던 기념비적인 전투가 된다. 다섯 왕과 연합군은 기습공격에 크게 당황하고 도망가기 시작한다. 기브온 남쪽은 산으로 가로막혀있고, 자신들이 왔던 길은 이스라엘이 이미 진을 치고 있는 상태에서 연합군은 해안평야 방향으로 난 길의 길목인 벧호른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벧호른은 해안평야로 이어지는 길의 길목이다.


 여호수아서 10장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살륙하고 벧로흔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른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기브온, 벧호른, 아얄론 골짜기의 위치에 대해서는 기브온 포스팅을 참조) 

 벧호른은 지금 현재 방벽으로 둘러싸여 출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오늘날 443번 도로를 따라 달리면 아모리 연합군이 퇴각한 길이 어떠한지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윗벧호른으로 올라가는 비탈길과 아랫벧호른에서 아얄론으로 이어지는 지역까지 이스라엘군은 퇴각하는 아모리 연합군을 죽이고 또 죽였다. 추격을 해도해도 끝이 없자 여호수아가 기도했고, 태양은 기브온에 달은 아얄론 골짜기에 머무르면서 추격은 계속되었다. 또한 하나님은 아얄론 골짜기를 따라 도망가던 아모리 연합군에서 큰 우박을 내리심으로 이스라엘이 죽인 것보다 더 많이 죽이셨다. 


아랫 벧호른부터 시작해서 아얄론까지 이어진 곳이 바로 아얄론 골짜기다. 아얄론으로 여겨지는 이 구릉은 지금 현재 1번 고속도로 옆에 있는 아얄론 공원 안에 있다.


 추격은 아얄론을 지나 더 남쪽에 있는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어진다. 기브온에서 시작된 전투와 이어진 추격으로 인해 여호수아는 가나안 남쪽 아모리 세력을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 여호수아는 비록 기브온 거민들과 평화조약을 맺는 실수를 했지만, 하나님은 그 실수까지도 자신의 섭리 안에서 이끌고 계셨던 것이다. 아래 영상은 기브온과 아얄론의 모습이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지도상에 표시된 도시들은 대략적인 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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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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