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글론은 이스라엘에서 국립공원(Ashkelon National Park)으로 지정하여 관리하는 곳이다. 이 곳은 유적지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훨씬 전부터 도시였던 이곳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도시가 점점 커졌다. 로마와 이슬람의 통치를 거치면서 지금 형태의 성벽이 완성되었다. 가나안 다섯 도시 중 유일하게 바닷가에 자리잡은 도시이기도 하다.


가나안 도시 성문의 모습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 점령한 도시지만, 점령 이후 이스라엘이 이곳을 다스리지는 않았다. 사사 시대와 다윗 때까지도 이 곳은 항상 블레셋의 도시였다. 삼손은 이 곳에 와서 삼십명을 쳐 죽이고 외투 30벌을 빼앗아서 딤나로 돌아갔다. 


AD 3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시대 바실리카의 모습


 알렉산더 이후에 아스글론은 급격히 헬라화되었다. 그리고 로마시대에 이곳에서 헬레니즘 문화가 꽃피웠다. 7세기 이르러 이슬람도 이 곳을 점령했을 때 큰 규모의 도시를 건설했다. 아래 영상은 가나안 성문과 헬레니즘 바실리카를 헬리켐으로 촬영한 것이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현재까지 발굴된 것들 중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아치형 성문


아치형 성문은 이중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상부 아치의 모습.


아스글론 외곽을 둘러싸고있는 성벽의 모습


로마시대 바실리카에 사용된 돌 기둥이 그대로 남아있다.


로마시대 바실리카의 제단 부분


바실리카의 제단 부분을 상공에서 찍은 사진





WRITTEN BY
Pastor Hwang
성경과 성지의 살아있는 연결을 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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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립나는 오늘날 Tel Bruna로 표기되어 있다. 립나는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당한 뒤 유다 지파에 할당되었다. 이후에 레위인의 성읍으로 제사장에게 할당된다. 가나안 정복 당시 여호수아가 기브온 전투에서 승리한 후 막게다까지 진군했고, 그 여세를 몰아 립나-라기스-에글론-헤브론-드빌을 차례로 정복함으로 가나안 남부 지역 원정을 마무리했다. 


발굴이 진행되다가 중단된 상태다. 역사적 중요성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앗수르의 산헤립은 라기스를 점령한 후에 이 곳을 공격했다. 


지리적 위치상 유다와 블레셋의 경계지역에 있다.


 아래 영상은 립나를 헬리켐으로 촬영한 것이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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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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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고에 올라서서 동쪽을 바라보면 봉긋 솟아오른 아세가가 보이고, 시선이 아세가에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보면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던 장소가 보이며, 소고 바로 앞으로는 엘라 골짜기가 바로 붙어있다. 소라-벧세메스-아세가를 따라서 38번도로를 타고 내려오다가 서쪽으로 베들레헴까지 이어지는 375번 도로로 접어든 후 5분 정도 달리면 길 옆으로 솟아오른 Tel Socah가 보인다.


Tel Socah 동쪽 상공에서 서쪽을 바라보고 찍은 소고의 모습


소고 상공에서 아세가 방면으로 바라본 모습


 아래 영상은 소고와 엘라골짜기를 헬리캠으로 촬용한 것이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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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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