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이 살던 당시는 이스라엘에게 참담한 시절이었다(사사들이 등장하기 직전 모든 시대가 그러했지만). 미디안과 아말렉 사람들은 추수할 때가 되면 낙타를 타고 올라와서 이스라엘의 모든 농작물과 가축을 쓸어갔다. 그래서 기드온 시대의 사람들은 산에 굴을 파고 들어가서 거주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신다. 미디안과 아말렉 군대와 싸우기 위해 32,000명의 이스라엘 군사들이 길보아산 북서쪽 기슭에 있는 하롯샘에 진영을 차렸다. 하지만 이때 하나님은 이런 명령을 하신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서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사사기 7장 2절) 

 그리하여 하나님은 32,000명의 군사 중에서 300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돌려 보내신다. 군사의 수를 줄여가는 과정의 무대가 되는 곳이 밑에 사진에 보이는 하롯샘이다. 하롯샘은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수량이 많고 아름다운 샘 중의 하나이다. 


하롯샘 상공에서 내려다 본 사진


 이스라엘에 현대국가가 세워지고 난 후에 물 사용량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지하수 고갈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하롯샘은 지금도 꾸준히 물이 솟는 상당히 큰 샘이다. 기드온은 이 샘물을 마시는 자세를 기준으로 300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집으로 돌려보냈다. 


하롯샘에서 바라본 모레산


 위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미디안과 아말렉 병력의 진영이 있는 모레산은 하롯샘에 멀지 않다. 미디안과 아말렉의 진영은 모레산 북쪽 사면에 있는 엔돌에 있었다. 그래서 32,000명의 병력이 하롯샘에서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래 영상은 하롯샘과 샘에서 이어지는 시내를 헬리켐으로 촬영한 것이다(1080p로 재생하며 선명합니다.).

 하롯샘은 지금 현재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세계 각지의 성지순례객들이 찾고 있으며 기드온의 군인들처럼 실제로 샘물을 마셔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물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갈릴리와 요단강과 사해까지도 수위가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할 때 지금도 하롯샘은 물이 많은 샘에 속한다.


샘에서 나온 물이 흘러가는 통로, 국립공원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물길이다.


물을 마셔보는 사람들




WRITTEN BY
Pastor Hwang
성경과 성지의 살아있는 연결을 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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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2월 현재 이스라엘 국립공원에서 관리하는 곳이다. Tel Balata에서 출발하여 자동차로 그리심산 북쪽 사면을 지그재그로 한참 올라간 후에 사마리안 지역 안에 있는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그리심산 정상에 올라서면 불어오는 바람에서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심산의 서쪽 사면은 굉장히 가팔라서 산 밑의 세겜이 손에 닿을 듯 하다.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찍은 그리심산의 전경


북족에서 남족을 바라보고 찍은 그리심산의 전경


그리심산 상공에서 바라본 에발산과 세겜의 모습


 사마리아인들에게 이 산은 예루살렘 성전산에 버금가는 성지다. 사마리아 전통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곳은 성전산이 아니라 그리심산이다. 사마리아인들은 지금까지도 그리심산에 모여 살면서 그들만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또한 그리심산은 축복의 산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의 언약을 상기시키면서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맞은편 북쪽에 있는 에발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에발산은 민둥산이지만 그리심산은 푸르다. 아래 영상은 그리심산, 에발산, 세겜 일대를 헬리캠으로 촬영한 것이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비잔틴 시대 교회의 모습


헬레니즘 시대 건물의 유적으로 올리브 프레스도 발굴되었다.


사마리아 성전의 기초석으로 알려진 돌들이다. 사마리아인들이 신성시하는 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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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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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정식명칭은 Tel Balata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곳을 고대 세겜으로 여기고 있다. 2015년 2월 현재는 통행이 가능하나, 가끔씩 이스라엘과 팔레스틴 간에 분쟁이 격화되면 통제되기도 하는 곳이다. 1930년대에 발굴이 거의 마무리된 Tel Balata는 현재는 팔레스틴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사실상 거의 방치되고 있다. 입장에는 아무런 통제가 없으며 유적지 안쪽에 자그마한 박물관이 있는데, 관람을 원하면 직원이 문을 열어준다.


Tel Balata 상공 100m 지점에서 촬영한 사진


세겜 상공에서 바라보면 이 도시가 동서를 관통하는 도로 상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옛날부터 지중해와 요단강을 이어주는 통로가 세겜을 통과했다. 에발산과 그리심산 사이로 길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세겜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한 이후 쇠퇴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왕 여로보암이 이 곳을 수도로 정했으나, 이후 오므리가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기면서 더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세겜은 상당히 큰 규모의 도시이며, 로마시대 이후로는 나블루스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세겜 상공에서 바라본 에발산


세겜 상공에서 바라본 그리심산


 족장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세겜에서 처음 단을 쌓았고 모레의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 그리고 야곱이 세겜에 머무르는 동안 딸 디나가 강간을 당했고, 야곱의 아들들은 피의 복수를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면서 가져온 요셉의 유골도 세겜에 묻혀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세겜으로 불러모으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상기시켰다. 이때 그리심산에서는 축복을 에발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했다. 아래 영상은 Tel Balata와 주변을 헬리켐으로 촬영한 것이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신전과 마당의 모습


Tel Balata 북서쪽 성문


Tel Balata의 규모를 짐작케하는 성벽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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