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시대에 가나안 사람들은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은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평야지대와 넓은 골짜기 지대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을 상대로 고전을 거듭했다. 이스라엘이 산간 지역에서 내려와 평원지대로 진출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병거에 가로 막혔다. 하지만 여사사 드보라와 납달리 지파 출신 바락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가나안의 병거를 이긴 전투가 있다. 바로 이스르엘 평야에서 펼쳐진 가나안왕 하솔의 군대장관 시스라의 철병거 900대를 격파한 전투다. 기드온이 미디안 아말렉 연합군을 물리친 모레산에서 가까운 다볼산 밑에서 펼쳐진 이 전투는 하나님이 도우실 때 승리할 수 있는 이스라엘을 잘 보여준다.


다볼산 상공에서 남서쪽 므깃도 방면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사실 시스라의 철병거를 상대하는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철저히 산악지역에서 게릴라 전술을 펼쳐야만 하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평지에서 철병거를 일반 보병부대가 이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드보라는 바락으로 하여금 10,000명의 병력을 다볼산으로 모으게 했다. 시스라는 이스라엘 병력이 다볼산에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므깃도 일대에서 모은 철병거와 모든 병력을 이끌고 이스르엘 평원을 가로질러 다볼산으로 진격했다. 그리고 드보라의 돌격 명령과 함께 바락은 10,000명의 군사들과 함께 다볼산을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보병이 철병거를 상대로 평지로 싸우러 내려가는 이상한 풍경이 펼쳐진다.


다볼산 상공에서 남쪽 모레산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드보라와 바락이 이렇게 무모하게 평지에서 철병거를 상대하려 한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사사기 4장 14,15절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한다.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한지라" 

 이어지는 사사기 5장에서 드보라는 이런 노래를 하나님을 찬양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산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고대사회에서 평지 전투의 최강자가 병거임은 분명하지만 이스르엘 평야에 갑자기 내린 폭우는 평지를 진흙탕으로 만들었고, 시스라의 병거는 무용지물이 되었던 것이다.


다볼산에서 동쪽 갈릴리 호수 방면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아래 영상은 다볼산 일대를 헬리켐으로 촬영한 것이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로마 카톨릭 전통에 의하면 다볼산은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하신 장소다. 물론 변화산이 어디인지를 두고는 크게 두가지 견해가 있는데, 헐몬산과 다볼산이 후보지다. 오늘날 다볼산 정상에는 프란시스코 수도회와 동방정교회 소속 교회가 각각 세워져있다. 많은 순례객들이 이 산을 오늘도 오르고 있다.


프란시스코 수도회 소속 변화산 기념교회


기념교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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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Hwang
성경과 성지의 살아있는 연결을 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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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울은 왕이 된 직후 얼마간 주변 민족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그결과 이스라엘은 어느정도 영토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난 후에 그의 전쟁은 그다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길보아산과 모레산 사이의 이스르엘 평야에서 사울은 블레셋과 최후의 전투를 벌이게 된다. 


길보아산 상공에서 북쪽 모레산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블레셋은 아벡에서 군사를 모은다. 이때는 다윗이 블레셋군에 가담한 상태였다. 하지만 블레셋 장군들은 다윗이 혹시 이스라엘과의 전투 중에 자신들을 배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윗과 그의 군사들을 돌려보낸다. 결과적으로 이 일은 다윗이 직접 이스라엘의 왕 사울을 죽였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계기가 된다. 만약 길보아산 전투에 다윗이 참여했고 그래서 사울이 죽었다면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권을 계승하는데 많은 반대가 있었을 것이며, 왕이 된다하더라도 정통성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컷다. 다윗을 배제한 블레셋은 아벡에서 출발하여 모레산 남서쪽 기슭 수넴까지 진격했다.


길보아산 상공에서 서쪽 벧샨 방면으로 찍은 사진


 모레산과 길보아산 사이에 있던 사울과 이스라엘은 수넴으로 다가오는 블레셋의 공격에 밀려 남쪽 길보아산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세는 이미 블레셋으로 기울었다. 요나단을 비롯한 사울의 여러 아들이 길보아산에서 전사했다. 사울 자신도 블레셋의 화살에 부상을 당했는데,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다음날 블레셋이 무기와 갑옷을 회수하러 길보아산에 와서 사울의 시신을 발견했고, 블레셋은 사울의 머리를 베고 시체를 길보아산 서쪽에 있는 벧샨으로 가져다 성벽에 못 박았다. 



아래 영상은 길보아산 일대를 헬리켐으로 촬영한 것이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길보아산 정상까지 차량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KKL에서 관리중이며, 사울산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간략한 설명이 있다.


오늘날 길보아산 정상은 패러글라이딩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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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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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레산은 남쪽으로 길보아산과 북쪽으로 다볼산 사이에 위치해있다. 날씨가 좋을때는 모레산 정상에서 남동쪽과 벧샨과 남서쪽의 므깃도를 볼 수 있다. 하롯샘에서 300명으로 추려진 이스라엘은 야간 기습작전을 준비한다. 100명씩 무리를 나눠 미디안과 아말렉 진영으로 들어가되 나팔과 항아리에 담은 횃불을 준비하고, 적 진영 근처에서 나팔을 불면서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고 적을 놀라게 하는 작전이었다. 아래 사진에서 당시의 대치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모레산 상공에서 남쪽 길보아산 방향으로 찍은 사진


 사사기 7장 1절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어더라" 

 여기서 기드온의 전투에 관한 시편의 언급은 당시 미디안 아말렉의 진영의 위치를 특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주는 미디안에게 행하신 것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소서 그들은 엔돌에서 패망하여 땅에 거름이 되었나이다"(시편 83:9-10)


모레산 상공에서 북쪽 다볼산 방면으로 찍은 사진


 밤에 길보아산 기슭 하롯샘에서 출발한 기드온과 300명의 군사들은 모레산 너머 엔돌에 있는 적진으로 다가갔다. 야간기습에 놀란 미디안 아말렉 군사들은 벧샨 방면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기드온과 이스라엘은 요단강 너머까지 추격을 이어갔다. 



 아래 영상은 모레산과 일대의 이스르엘 평야를 헬리켐을 촬용한 것이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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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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