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은 왕이 된 직후 얼마간 주변 민족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그결과 이스라엘은 어느정도 영토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난 후에 그의 전쟁은 그다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길보아산과 모레산 사이의 이스르엘 평야에서 사울은 블레셋과 최후의 전투를 벌이게 된다. 


길보아산 상공에서 북쪽 모레산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블레셋은 아벡에서 군사를 모은다. 이때는 다윗이 블레셋군에 가담한 상태였다. 하지만 블레셋 장군들은 다윗이 혹시 이스라엘과의 전투 중에 자신들을 배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윗과 그의 군사들을 돌려보낸다. 결과적으로 이 일은 다윗이 직접 이스라엘의 왕 사울을 죽였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계기가 된다. 만약 길보아산 전투에 다윗이 참여했고 그래서 사울이 죽었다면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권을 계승하는데 많은 반대가 있었을 것이며, 왕이 된다하더라도 정통성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컷다. 다윗을 배제한 블레셋은 아벡에서 출발하여 모레산 남서쪽 기슭 수넴까지 진격했다.


길보아산 상공에서 서쪽 벧샨 방면으로 찍은 사진


 모레산과 길보아산 사이에 있던 사울과 이스라엘은 수넴으로 다가오는 블레셋의 공격에 밀려 남쪽 길보아산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세는 이미 블레셋으로 기울었다. 요나단을 비롯한 사울의 여러 아들이 길보아산에서 전사했다. 사울 자신도 블레셋의 화살에 부상을 당했는데,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다음날 블레셋이 무기와 갑옷을 회수하러 길보아산에 와서 사울의 시신을 발견했고, 블레셋은 사울의 머리를 베고 시체를 길보아산 서쪽에 있는 벧샨으로 가져다 성벽에 못 박았다. 



아래 영상은 길보아산 일대를 헬리켐으로 촬영한 것이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길보아산 정상까지 차량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KKL에서 관리중이며, 사울산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간략한 설명이 있다.


오늘날 길보아산 정상은 패러글라이딩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WRITTEN BY
Pastor Hwang
성경과 성지의 살아있는 연결을 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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