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보아산 전투에서 전사한 사울은 블레셋에 의해 그 시체가 벧샨 성벽에 못박혔다. 오늘날 벧샨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대 벧샨과 더불어 헬라시대와 로마시대에 번창했던 스키토폴리스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아래 영상은 벧샨 일대를 헬리켐으로 촬영한 것이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벧샨은 지리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 북으로는 갈릴리로 향하는 길과 동서로 이스르엘 평야에서 요단강을 건너는 길목에 있으면 남으로는 여리고로 이어지는 도로 위에 있다. 

 고대 벧샨이 있는 텔에 올라서면 길보아산이 한 눈에 바라보인다. 사울의 시체가 옮겨졌을 경로가 머리 속에 그려질 정도다. 벧샨에 못박힌 사울의 시체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가져가 장례를 치렀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이전에 자신들을 구원해 준 사울의 은혜를 갚았던 것이다.


벧샨 상공에서 서쪽 길보아산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길보아산 전투 이후 블레셋이 점령했던 벧샨은 이후 다윗이 다시 점령했다. 이스라엘 왕이 당한 치욕을 되갚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솔로몬 왕은 벧샨을 자신의 행정구역에 포함시키고 행정건물들을 세웠다. 하지만 주전 732년 앗수르에 의해 파괴된 이후엔 버려진 도시가 되고 만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주전 3세기 알렉산더의 헬라제국 시대에 이르러 도시는 다시 일어선다. 이름도 벧샨에서 스키토폴리스로 바뀐다. 알렉산더가 죽고 난 후에 알렉산더의 부하 장군이었던 프톨레미와 셀류시드는 스키토폴리스를 놓고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그 정도로 지리적 중요성이 컷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주전 63년 로마의 폼페이가 이스라엘을 점령한 후에 도시는 텔에서 내려와 평지에 자리잡는다. 로마식 도로가 세워지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도로, 목욕탕, 신전, 극장의 흔적들이 비교적 온전하게 발굴된 상태다. 



로마식 극장


로마시대에 세워진 이 극장은 비잔틴 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극장건물을 받쳤던 기둥들


스키토폴리스 서쪽에서 발견된 목욕탕에 있는 물을 데우는 시설


스키토폴리스에서 발견된 로마시대 목욕탕은 크기가 100*90m에 달한다.


실바누스 거리 옆에 세워져있는 기둥들


팔라디우스거리의 모습, 뒷편으로 고대벧샨이 있는 텔이 보인다.


비잔틴 시대에 사용된 아고라의 모습, 발굴에 의하면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으로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고대 벧샨에 있는 이집트 관리의 건물에 발견된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진 돌


BC 4,0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거주지의 흔적


고대 벧샨에 남아있는 성벽의 흔적



WRITTEN BY
Pastor Hwang
성경과 성지의 살아있는 연결을 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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