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란을 비롯한 사해 일대에서 1세기의 성경사본이 발견되던 때에 학자들은 긴장했다고 한다. '혹시 지금 우리가 가진 성경이랑 다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걱정은 기우에 그치고 말았다. 쿰란 제4동굴에서는 완벽하게 보존된 이사야서 사본이 발견되었다. 이전까지 가장 오래된 구약성경 사본은 레닌그라드 사본으로 기원후 1,000년경의 사본이다. 하지만 1세기의 쿰란사본과 레닌그라드 사본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함을 보여주었다. 이 발견으로 말미암아 성경의 사본상의 오류와 편집을 주장하던 쪽에서는 별로 할 말이 없어지게 되고 말았다. 천년을 뛰어넘은 실로 엄청난 발견이었다.


 예루살렘에서 1번 국도를 타고 여리고를 지나 90번 도로로 우회전 후 10분 가량 달리면 쿰란 국립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쿰란 남쪽 상공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촬영한 사진이다. 쿰란 공동체 유적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쿰란 유적지를 살펴보면 인상적인 것이 수도시설이다. 헬리캠 상공 사진에서 보이듯이 이곳은 메마른 땅이다. 그러나 쿰란 공동체는 대규모 저수시설을 마련해서 비로 내린 물을 모았고, 그 물들을 공동생활 구역에 곳곳에 보내는 시설을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은 1세기 당시에 이곳에서 200~300명 가량이 생활했던 것으로 여기고 있다. 아래 영상은 쿰란 전경과 쿰란 상공에서 바라본 사해의 모습니다(720p 60fp로 재생하면 훨씬 선명합니다.).

이 정도 규모의 저수시설이 공동생활 구역 내에 여러군데 있다.


 쿰란 공동체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들이 남긴 성경필사본 때문이다. 수도사들은 절벽에 있는 동굴과 이 거주시설을 왔다갔다 하면서 생활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것은 쿰란 상공사진에서 성경필사방으로 표시된 부분에서 잉크와 팬 그리고 커다란 필사대가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학자들은 성경과 기타 여러 문서들을 공부하고 필사하는 것이 쿰란 공동체의 중요한 일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성경필사방에서 발견된 책상이다. 필사하면서 썻던 것으로 보인다.


 쿰란 공동체는 1세기 말 무렵 로마가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피신하게 된다. 그리고 수도사들은 그들의 필사문서들을 쿰란 주변 동굴에다 숨겨놓았다. 아마도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국이 안정되면 자신들이 숨긴 문서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필사문서들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는 이천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정말 신기한 것이 이천년이라는 기간동안 동물의 가죽에 잉크로 필사한 문서들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보존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래 사진은 쿰란에서 가장 많은 양의 문서와 성경사본 그리고 완벽히 보존된 이사야서 사본이 발견된 쿰란 제4동굴을 찍은 것이다.


쿰란 4-C 동굴. 쿰란 유적 바로 옆에 있고, 온전한 이사야서 사본이 발견된 곳이라 쿰란 동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아래 영상은 지상에서 잘 보이지 않는 쿰란 제4동굴 모습을 근접촬영한 것이다(720p 60fp로 재생하면 훨씬 선명합니다.). 


WRITTEN BY
Pastor Hwang
성경과 성지의 살아있는 연결을 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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